28호 PL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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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단순한 장난감 하나가 사람들의 손끝을 사로잡고 있다. 누르면 깨지고, 누를 때마다 익숙한 소리와 감각을 돌려주는 왁뿌볼부터 키캡 키링, 말랑이까지. 더 강한 자극보다 예측 가능한 감각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 사람들이 손끝에서 찾고 있는 작은 쾌감의 정체를 따라가 본다.


작은 장난감이 만든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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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점토로 빚은 클레이 장난감, 그 위를 덮은 얇은 왁스 한 겹, 누를 때 나는 소리. 2천 원대에 팔리는 왁뿌볼의 기능은 그게 전부다.

이 단순해 보이는 장난감을 사기 위해 20대가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로 간다. 1960년 동대문역 일대에 형성된 국내 최대 문구·완구 도매시장이자, 오랫동안 가족 단위 방문객의 자리였던 곳이다. 이곳을 오래 지킨 상인은 지난 4~5월의 풍경을 20년 전 명절보다 더 붐빈다고 묘사할 정도.

그런데 이 움직임은 장난감에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해 20대는 서점으로도 갔고,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는 키보드 자판을 가방에 달기 시작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손끝의 감각에 목마르게 했을까. 그리고 그 손끝에서 이들이 확인하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화면 밖으로 나간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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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데일리안

서울 창신1동 장난감 소매업의 월평균 매출은 2026년 5월 3,412만 원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77.4% 늘었다.

서점에서도 결이 같은 수치가 나왔다. 교보문고 집계에서 20대의 소설 오프라인 구매 비율은 2024년 28.5%, 2025년 30.1%, 올해 30.6%로 꾸준히 올랐다. 눈여겨볼 것은 연령대 비교다.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구매 비중이 높은 연령대는 20대뿐이고, 30대 이상은 반대다. 온라인 쇼핑에 가장 익숙한 세대가 유일하게 매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인용한 나일슨 조사에서 14~25세 독자의 80%가 종이책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다만 화면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남는다. 이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샀는지가 그렇다.


촉각에서 청각, 미각으로 확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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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사에서 촉감 완구를 산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답은 ‘만졌을 때 감촉’으로 71.7%였다. 두 번째가 ‘스트레스 해소 및 긴장 완화’ 43.4%다. 응답자의 51.9%가 이런 제품을 사거나 만들어 봤고, 20대에서는 65.0%였다.

가장 선명한 사례는 키캡 키링이다. 키보드에서 자판 하나를 떼어내 열쇠고리로 만든 물건으로, 붙어 있을 때 이 부품의 용도는 문자를 입력하는 것이었다. 키보드 고유의 입력 기능은 떼어내고 감각만 남긴 셈인데, 핵심 기능을 덜어낸 키캡의 인기는 거래액이 한 패션 플랫폼에서 약 175배 늘고 검색량은 28배 증가할 정도로 대단했다.

커뮤니티에서 키캡 키링에 붙는 연관어 가운데 하나가 ‘타건감’이다. 키보드를 칠 때의 손맛을 가리키던 말이 열쇠고리로 옮겨붙었다. 또한 누를 때마다 딸깍거리는 키캡의 소리가 마음을 안정화한다는 후기도 적지 않다.

청각으로 확장된 촉각은 식품 산업으로도 그 범위를 넓혔다. 연세유업에서 출시한 ‘깨먹는 하트크림빵’은 왁뿌 트렌드를 F&B로 확장한 성공적인 사례다. 초콜릿 코팅을 손으로 깨뜨린 뒤 먹는 이 생크림빵은 출시 일주일 만에 15만 개가 팔렸다. 뚜레쥬르에서는 유사한 개념의 앙증맞은 과일 모양 ‘아그작 케이크’를 출시했고, 예약 및 웨이팅 행렬까지 이어질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더 강한 자극 대신 남은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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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ahoo! JAPAN

지난 몇 해 동안 감각의 경쟁은 강도의 축에서 벌어졌다. 더 매운 것, 더 단 것, 더 낯선 재료. 그러나 이 축에는 끝이 있다. 왁뿌볼과 키링의 유행은 더 강한 자극을 찾는 식품 트렌드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 왁스는 매번 같은 세기로 깨지고, 키캡은 매번 같은 소리로 눌리며, 말랑이의 촉감 역시 늘 예상 가능한 감각을 전해준다. 더 세질 수 없는 대신 매번 같은 결과를 돌려주는 셈이다.

이 원리를 제품 설계로 먼저 증명한 쪽은 일본이다. 2007년 반다이의 ‘∞프치프치’(∞プチプチ)는 포장용 완충재를 터뜨리는 감촉만 남긴 장난감으로 누적 260만 개 넘게 팔렸다. 2021년 후속작의 개량 방향이 사뭇 흥미롭다. 새 기능을 얹는 대신 버튼 안에 공기를 가두는 구조를 새로 짜서, 누를 때의 물렁함과 터질 때의 딱딱한 클릭감을 실물에 더 가깝게 맞췄다. 시제품만 열 번 넘게 고쳤다. 목표가 더 센 자극이 아니라 더 정확한 재현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MZ세대는 왜 예측 가능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일까? 최근 연구 사례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2025년 영국 요크대 연구진의 ‘근접 예측 가설’(Proximity Prediction Hypothesis)에 따르면, 뇌는 감각 신호를 예측과 견주어 어긋남을 검출하고 예측이 맞을 때 부교감 활성이 늘어 심박수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숏폼 미디어와 각종 SNS 등 감각 자극이 지나치게 높은 시대에, 소소하고 예측 가능한 자극이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키덜트 문화 아래 언젠가 사그라들 유행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어느 세대보다 불안감이 높은 요즘 세대의 탈출구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매번 같아서, 오히려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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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원짜리 왁스 공,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는 자판, 두 손 가득 부드럽게 눌리는 말랑이까지.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하나다. 누를 때마다 같은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

예측이 어긋나지 않는 경험은 생각보다 드물다. 알고리즘이 무엇을 띄울지 모르고, 유행은 언제 바뀔지 모르며, 화면 너머의 것이 사람 손을 거쳤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그 사이에서 왁스는 누르면 반드시 깨지고, 키캡은 몇 번을 눌러도 익숙한 소리를 뱉어낸다. 더 강한 자극을 찾아 올라가던 감각이 비로소 쉬어가는 자리는, 매번 똑같아서 믿을 수 있는 가장 작은 결과값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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